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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해군의 최대 굴욕 '푸에블로호나포사건'

1967년 12월 18일 미국 간첩선인 푸에블로호가 비밀 지령을 받았다. 푸에블로호는 북한 동해에서 쓰시마 해협에서 활동중인 구소련 태평양 함대 감시 임무와 정찰 명령을 수행중이었다. 푸에블로호는 일반적인 군함이 아니다. 최신식 전파탐지기를 탑재한 이른바 간첩선이었다.

1월 22일 자국 영해상에서 북한 경비정은 이 푸에블로호를 발견한 후 4척의 초계함과 북한 공군 전투기를 이 지역에 급파해 선박을 나포했다. 북한 해군은 깃발 신호로 '국적을 밝혀라'고 요구했고 푸에블로호 함장이었던 로이드 마크 부처는 공해상 서 작업중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응답을 받기 전 북한 경비정 선장은 '정지하지 않으면 발포하겠다'라는 신호를 보낸 후에서야 푸에블로호는 미국 국기를 선상에 걸었다.그러나 푸에블로호는 항해를 계속했다.

미국은 미국첩보선인 푸에블로호가 북한 육지로부터 15.8마일 떨어진 곳에 있었다고 지적했다. 즉 공해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북한은 자국 영해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경고 사격 이후 정지한 푸에블로호에 어뢰를 발사했다. 당시 함대 승무원들은 정보 기밀 문서를 불태웠다. 또한 정찰 목적으로 사용한 전파탐지기도 없애려고 했다. 기밀을 은폐할 수 있는 남은 방법은 하나였다. 바로 푸에블로호를 침몰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로이드 마크 부처 함장의 이 같은 계획은 실패했다. 결국 초계함에 의해 푸에블로호는 인양됐으며 승무원들도 생포됐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린든 존슨은 분노했다. 미국 정부는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했다. 그리고 미 해군 핵항공모함인 엔터프라이즈호를 북한 원산항 근해에 보내는 등 강경 조치를 취했다. 구소련 태평양 함대도 긴박한 상황에 준비 태세를 갖췄다. 미국 국가안보국(NSA)과 미 해군은 자신들의 기밀 보안 장비 및 문서들이 북한에 흘러들어가는 참상을 맛봐야 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기밀 사항들은 얼마 후 러시아 군사 전문가들에 넘겨졌다. 푸에블로호에서 압수한 장비 덕분에 미 해군이 사용하는 수만개의 군 암호를 해독할 수 있게 됐다.

미국은 푸에블로호 나포 첫날 푸에블로호 및 선원들에 대한 조속한 석방, 북한의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이에 북한도 강력히 대응했다. 북한은 미국이 북한 영해 침범을 인정하며 이에 사과하지 않을 경우 승무원들을 석방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미국의 위협은 계속됐다. 한국은 예비군을 동원하는 등 임전 태세 강화했으며 미국은 재향군인을 모집했다. 이는 북한에 대한 공격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당시 생포된 승무원들은 북한에 일년 동안 구금돼 있었다. 1968년 결국 미국은 영해침범을 시인하고 사과해야 선원들을 돌려줄 수 있다는 북한의 주장을 받아들여 영해침범을 인정했다. 비로서 12월 23일 승무원이 석방됐다.

푸에블로호의 교훈이 떠오르는 것은 최근 한반도에서 진행되고 있다. 한미 군사훈련인 키리졸브 훈련과 독수리 연습이 때문이다. 아직까지 미국은 이해를 못하는 것 같다. 미국의 위협에 북한이 겁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푸에블로호는 현재 북한에 있다. 원산항에 있던 것을 1995년 평양으로 옮겼고 지금은 관광객과 지역 주민들이 자주 찾는 명소가 됐다. 미국 해군은 현재까지도 푸에블로호를 미 해군 함에서 제외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푸에블로호는 미국 해군 함대 중 유일하게 다른 국가에 있는 선박이 됐다. 이미 47년 간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