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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비 540만원 안주고 1년여 버티던 중년 아빠… 구치소 보내겠단 판사 말에 법정서 '바로 送金'

양육비 미루는 부모 늘자 법원 '감치 명령' 초강수 둬
구치소 가도 양육비 내야 해… "돈 없다" 우기다가도 지급

양육비 이행 신청 명령 건수 그래프
"판사님! 잠깐만요. 제발 전화 한 통만 하게 해주세요."

지난달 서울가정법원의 한 법정. 한 중년 남성이 재판장에게 급히 전화를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애걸했다. 재판장이 허락하자 이 남성은 바로 자신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다급하게 말했다. "지금 당장 ○○ 엄마한테 송금 좀 해주세요."

'○○ 엄마'는 이 남성의 전처다. 부부는 2004년 협의이혼을 하면서 장애가 있는 딸을 아내가 키우고, 남편은 매월 40만원씩 양육비를 주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남성은 양육비 지급을 차일피일 미뤘고, 2009년 경제적 어려움을 견디지 못한 여성은 남성을 상대로 소송을 내기도 했다. 이후에도 남성이 돈을 주지 않자 결국 아이 엄마는 지난해 8월 "밀린 양육비 540만원을 달라"며 법원에 양육비 이행명령 신청을 냈다.

지난달 두 사람을 심리한 서울가정법원 가사31단독 정용신 판사는 이 남성이 정당한 이유 없이 계속해 양육비를 주지 않는다고 판단해 15일간의 감치(監置·구치소 등에 가두는 것)를 결정했다. 그러자 이 남성이 전문직 종사자인 자기 어머니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 엄마'의 계좌로 이미 건넨 20만원을 제외한 520만원을 즉시 송금했다. 돈을 받은 아이 엄마는 즉시 법원에 탄원서를 냈고, 오전에 수감된 이 남성은 반나절 만인 이날 오후 구치소에서 풀려났다.

이혼 이후 양육비를 안 주려고 버티는 사람들에 대해 법원이 이행명령·감치·과태료 부과 등 강력한 제재를 가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법원의 도움을 받아 밀린 양육비를 받아내는 사람도 동시에 늘어나고 있다. "정말 돈이 없어서 못 주는 것"이라고 우기던 '나쁜 부모'들은 수백만원의 과태료를 물게 되거나 구치소에 감치될 위기에 처하면 갑자기 어디에선가 목돈을 마련해와 밀린 양육비를 한꺼번에 갚는다고 한다.

양육비 이행명령은 전 배우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양육비 등 지급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돈을 받지 못한 당사자가 법원에 신청하는 제도다. 법원은 심리를 거쳐 이행명령을 내리고, 전 배우자가 그래도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30일 이내의 감치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이 제도는 1990년부터 법으로 규정돼 있었으나, 2000년대까지는 연간 100여건의 신청만이 법원에 들어왔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신청 건수는 2011년 213건, 2012년 279건, 2013년 267건, 2014년 362건으로 증가세에 있다. 감치 결정이 내려진 사건도 2011년 12건에서 2014년 26건으로 증가하고 있다. 서울가정법원의 한 판사는 "신청자 대부분은 경제적 어려움을 견디지 못한 엄마들"이라고 말했다.

'나쁜 아빠'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감치다. 벌금형은 벌금을 내지 않으면 구치소에 머무는 동안 벌금이 차감되지만, 양육비 불이행에 따른 감치는 감금만 될 뿐 양육비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그래서 판사가 "자꾸 이런 식으로 우기면 감치를 할 수도 있다"고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감치를 당해 직장에 '아이 생활비도 안 주는 나쁜 아빠'로 소문이 나느니 빨리 돈을 주는 게 낫겠다고 판단해 밀린 양육비를 한꺼번에 준다는 것이다.

올 3월부터는 양육비를 받을 수 있게 도와주는 '양육비 이행 관리원'(여성가족부 산하 기관)도 출범했다. 법원 관계자는 "사법부와 정부가 이혼 가정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애쓰는 만큼, 앞으로 제재 신청과 양육비를 제대로 지급하는 사례가 동시에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법원 내부에선 "감치 명령이 좀 더 잘 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원에서 감치 명령을 내렸을 때 당사자가 법정에 있으면 바로 감치하지만, 당사자가 법정에 나오지 않은 경우엔 집행영장을 발부해 관할 경찰서에 보낸다. 하지만 이 영장이 잘 집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가정법원 관계자는 "양육비가 제때 지급되지 않으면 아이들의 양육이나 교육에 문제가 생기고, 부모의 이별로 상처받은 아이들이 또 다른 상처를 입게 된다"며 "법원이 강력한 조치를 취하는 만큼 경찰도 적극 협조하기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