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미도
월미도용사들의 위훈
인천 서쪽 800m지점에 있는 월미도는 인천시가와 방파제로 잇닿은 작은 섬이였다. 해발 105m의 피라미드형으로 된 이 섬은 인천항구로 통하는 배길을 지배하면서 길게 누운 모양이 마치 달의 꼬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월미도라고 불렀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월미도는 군사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적들이 이 월미도를 장악하지 않고서는 인천에 대한 상륙도 《총공세》의 목적도 달성할수 없었다.
하여 넓이가 약 1㎢밖에 안되는 월미도가 세계전쟁사에 있어본적이 없는 치렬한 격전장으로 되였다.
주체39(1950)년 9월 13일 미제는 대병력을 동원하여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였다. 그때 월미도의 무장인원은 한개의 인민군 해안포병중대와 한개의 보병중대가 전부였으며 무장장비로는 불과 4문의 크지 않은 포가 있었을뿐이였다.
반면에 적들은 5만여명의 대병력과 수백척의 함선, 1 000여대의 비행기를 동원하여 월미도로 달려들었다.
력량상우세를 믿고 기고만장해진 미제는 월미도를 단숨에 삼켜볼 심산으로 먹이를 본 승냥이마냥 악착스럽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미제는 오산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의 명령관철을 위해서라면 청춘도 생명도 서슴없이 바칠 각오를 가진 인민군전사들이 월미도를 지키고있었던것이다.
월미도를 끝까지 지켜낼데 대한 영예로운 임무를 맡은 해안포병중대와 보병중대의 영웅전사들은 섬 전체가 타번지는 불바다속에서도 엄청나게 많은 적들과 맞서 영웅적으로 싸웠다. 적들은 여러차례에 걸쳐 끈질기게 덤벼들었지만 그때마다 월미도용사들의 반격을 받고 물러서지 않을수 없었다.
치렬한 격전속에 이틀이 지났다.
파도식으로 달려드는 적의 상륙기도를 분쇄한 월미도해안포중대에는 포가 한문밖에 남지 않았으며 적지 않은 전투원들이 장렬하게 희생되였다. 남은 전투원들도 지치고 부상당한 몸들이였다.
그러나 월미도의 용사들은 조금도 굴하지 않았다. 그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을 높이 받들고 마지막 피한방울 남을 때까지 월미도를 지켜 용감히 싸울것을 굳게 맹세하였다.
전투가 시작된지 3일째 되는 날인 9월 15일, 련일 월미도상륙에서 실패한 미제는 비행대의 폭격과 함포사격을 더욱 미친듯이 감행하였다. 적의 비행대는 100차이상 덤벼들었으며 월미도에 놈들의 선견대가 상륙하기 전 15분동안에만도 3 000여개의 폭탄을 떨구었다.
그렇지만 월미도의 방위자들은 적들의 발악적인 폭격과 포격도 두려워하지 않고 한발자국도 물러섬이 없이 희생적으로 싸웠다. 그들은 한문밖에 남지 않은 포로 마지막포탄까지 적함을 쏘았다. 여러척의 적상륙정이 또다시 물속에 처박히였다.
월미도방위자들은 최후의 결사전에 들어서면서 위대한 수령님의 건강을 삼가 축원하며 조국의 영예를 지켜 끝까지 싸울 불타는 결의를 담은 전보문을 상급참모부에 보내였다.
마지막전파가 날아가는것과 때를 같이하여 해안포중대장이 《동무들! 위대한 수령님을 위하여 돌격 앞으롯!》 하고 웨치며 앞장에서 달려나갔다. 그뒤를 따라 월미도방위자들은 일제히 적들을 맞받아나갔다. 통신병도, 위생병도, 취사원도 모두가 한사람같이 중대장의 뒤를 따라 육박전에 뛰여들었다.
이렇게 월미도의 용사들은 마지막한사람이 남을 때까지 결사적으로 싸워 적구축함 3척을 비롯한 각종 함선 13척을 격침, 격파하고 적의 상륙을 3일간이나 지연시킴으로써 인천-서울지역 방어부대들에 귀중한 시간을 보장해주었다.
월미도방위자들이 세운 이 빛나는 위훈, 그것은 세계전쟁사가 알지 못하는 또 하나의 기적이였다.
과연 무슨 힘이 그렇듯 평범하고 소박한 병사들을 빛나는 위훈의 창조자로 되게 하였겠는가.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월미도방어전투가 있은 때로부터 얼마후인 주체39(1950)년 10월 10일 월미도용사들의 위훈을 높이 치하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월미도방위자들이 이 전투에서 무비의 희생성과 대중적영웅주의를 높이 발휘할수 있은것은 그들이 해방후 5년간의 생활을 통하여 자기들을 공장의 주인, 땅의 주인으로 되게 해주고 행복한 새 생활을 마련해준 조국과 인민민주주의제도의 귀중함을 가슴깊이 느꼈기때문입니다.》
바로 그것이였다.
월미도방위자들이 생사를 판가리하는 결전의 마당에서 무비의 희생성과 대중적영웅주의를 높이 발휘할수 있은것은 조국과 인민민주주의제도의 귀중함을 가슴깊이 느꼈기때문이였다.
조선인민에게 있어서 조국은 곧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이시였다. 그이께서 계시여 조선인민은 난생처음으로 공장의 주인, 땅의 주인으로 되였으며 행복한 새 생활도 누리게 되였다. 해방후 5년동안의 생활체험을 통하여 조선인민은 김일성주석이시야말로 조선민족의 운명이시고 미래이시며 그이를 높이 받들어모시고 그이의 뜻을 받들어나가는 길에 자신들의 존엄과 행복, 영예도 있다는것을 철석의 신념으로 간직하였다.
이러한 철석의 신념을 지니였기에 월미도방위자들은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온몸이 그대로 육탄이 되여 결사전에로 나갔으며 세계가 경탄해마지 않는 빛나는 위훈을 세울수 있었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