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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헌법 기초, 영국이 만들었는데…영국엔 法典 하나 없다니

['마그나 카르타'800주년, 성문헌법 제정 목소리 커져]

마그나 카르타가 英 헌법 역할… 역설적으로 불문법 국가로 남아
그동안은 관습·상식으로 판결… 연방 유지 등 법이 없어 혼란

영국 런던에서 서쪽으로 30㎞쯤 떨어진 러니미드(Runnymede). 1215년 6월 15일 잉글랜드의 존(John) 왕이 40명의 귀족 앞에서 "왕의 권한을 제한하고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겠다"며 63개 조항의 '마그나 카르타〈사진〉'에 서명한 역사적 장소다. 15일(현지 시각)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등 영국 주요 인사들이 이곳을 찾아 서명 800주년 기념식을 성대하게 열었다. 캐머런 총리는 "국민과 정부 간의 권력 관계를 영원히 바꾼 '대헌장'이었다"고 연설했다.

'마그나 카르타'는 세금과 상속, 공정한 재판, 개인의 자유 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 등 수많은 국가의 헌법이 만들어지는 데 영향을 줬다. 그러나 정작 영국에선 '마그나 카르타'가 헌법의 역할을 대신하면서, 별도의 성문헌법이 필요 없는 '역설적 상황'을 만들었다. 영국이 지금까지 불문법 국가로 남게 된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최근 영국에선 '국가 정체성 확립과 효율적 통치를 위해 성문헌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영국에는 헌법이나 민법, 상법 같은 법전(法典)이 없다. 대신 수백년간 축적돼 온 판례(判例)와 구체 사안별로 의회가 제정한 법률에 따라 재판을 한다. 만약 이전에 없던 새로운 범죄나 논쟁을 다뤄야 할 경우, 판사들이 관습과 상식에 기초해 판결을 내려왔다. 이때 판단 준거를 제공하며, 헌법의 기능을 해온 것이 '마그나 카르타'였다. 하지만 사회가 점점 복잡해지면서 불문헌법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심지어 총리의 역할에 대한 명문화된 규정이 없어 보수당과 자유민주당이 연정을 꾸린 지난 정부에선 총리 권한을 두고 의회에서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특히 지난해 불거졌던 스코틀랜드 독립운동은 성문헌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싣는 계기가 됐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14일 "영국 정부는 스코틀랜드와 웨일스, 북아일랜드에 더 많은 권한을 이양하겠다고 했지만, (영국 연방을 유지하려면) 어느 정도까지 용인할 수 있는가에 대한 법적 기준이 없어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성문헌법 제정을 위한 구체적 행동들도 나오고 있다. 노동당 소속 그레이엄 앨런 하원 의원은 '정치·헌법 개혁위원회'를 만들어 지난해 국가 이름부터 기본 인권까지 이르는 내용을 다룬 71쪽 분량의 헌법 모델을 내놓았다. 그는 "국민은 이제 국가 지배 원리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제러미 퍼비스 상원 의원도 최근 의회에 헌법 제정을 위한 법안을 발의했다. 그는 "영국 연방의 존립을 위해서도 국가를 정의할 헌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반 국민 사이에서도 성문헌법에 대한 지지가 높다. 영국 사회조사 기관 '조셉 라운트리 재단'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영국 국민의 75% 안팎이 성문헌법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불문헌법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상원 의원 겸 헌법학자인 필립 노턴은 "헌법을 명문화하면 거기에 얽매여 국가를 유연하게 통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

1215년 6월 15일 잉글랜드의 존(John) 왕이 서명한 63개 조항의 문서로 대헌장(the Great Charter)으로도 불린다. 형인 '사자왕' 리처드 1세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은 존 왕은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번번이 패하며 땅을 빼앗겼다. 존 왕이 전쟁을 위해 막대한 세금을 거둬들이고 종교를 탄압하자, 귀족과 사제들 사이에서 그를 폐위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졌다. 결국 유약했던 존 왕은 귀족들의 요구를 수용해 왕의 권한 축소 등에 대한 내용을 명시한 문서에 서명하고 왕위를 보장받았다. 이렇게 탄생한 3500 단어의 '마그나 카르타'는 국민의 자유를 명시한 근대법의 기초라는 평가를 받지만, 원래는 존 왕과 귀족 간의 타협 문서였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