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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에 의해 만들어진 국가는 과연 정당한가?

국가는 계약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하는 의견이 있다. 이 사상은 왕권신수설에서 벗어나서, 조금 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시선에서 사회와 국가, 지배자의 형성을 보는 혁명적인 학설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주장하는 이 계약은 계약은 계약이되 노예계약이라고 본다.

첫번째, 선대의 계약이 대대로 이어진다.

만인이 평등한 국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봉건제 하의 계급이든 자본주의 사회 하의 계급이든, 그 나라의 정치체제가 군주정이든 귀족정이든 대의민주주의이든 간에 계급은 분명히 존재하며 그것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군주정이나 귀족정에서 하위계층은 참정권이 없었다.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백성은 자신의 대표자를 뽑아 자신의 권리를 표현할 수 있지만, 이는 언제나 자신의 군주를 뽑는 것이지 자신의 분신을 뽑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국민의 심부름꾼이라고 비유적으로 말하긴 하지만 도대체 누가 진심으로 그들이 정말 그러하다고 믿는가?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지도자를 뽑아왔지, 심부름꾼을 뽑아온 적이 없었다. 고대의 직접민주주의 국가들도 노예, 외국인, 여성과 같은 일부 계층의 정치참여를 제한했다. 결국 어떤 국가에서든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은 나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피지배계층이 국가와 계약을 맺는다는 것은 자신의 권리 중 일부를 지배계층에 양도하는 것에 가깝다. 일반적인 계약이라면 이것을 선택하는 주체는 계약자 본인이 되어야 하겠지만, 희한하게 국가는 그러한 권한을 주지 않는다. 그 대신 처음 계약을 맺은 사람의 후손을 "국민"이라 일컫고 그 후손들 역시 계약에 참여한 것으로 간주한다. 즉 국가를 만드는 계약은 처음에는 선택권이 있었을지라도 나중에는 없는 것이다.

두번째, 이 계약에서 개인은 항상 을이다.

계약에는 갑과 을이 있다. 대개의 상황에서 갑은 국가이고 을은 개인이다. 생수국 국민인 내가 생수국보다 이웃나라 펨코국에 더 끌린다고 해도 나는 생수국과 펨코국 사이에 전쟁이 났을 때 생수국 군대에 징집되어 싸우게 된다. 만약 바다 건너 잉토국으로 떠나고 싶다고 해도 이것은 자유롭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국가 비상상황에서는 최근 난민 사태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개인에게 엄청난 위험이 따른다. 하지만 생수국을 쉽사리 떠날 수 없는 나와는 달리 생수국은 나를 쉽게 추방할 수 있다. 즉 국가를 만드는 계약은 동등한 관계에서 이루어진 계약이 전혀 아니다.

세번째, 기본권을 말살하지 않는 이상 억압적인 국가의 공권력은 유지된다.

강력한 권력을 추구하던 사상가들도 히틀러와 같은 학살자를 보면 고개를 저을 것이 분명하다. 그와 같이 기본권을 말살하려 든 독재자들은 그의 추종자들을 제외한 사람들에게 항상 비판받고, 반면교사가 된다. 하지만 그렇게 히틀러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국가가 기본권을 제한할 때는 기본권 제한으로 인한 인권침해가 상당하더라도 옹호할 수 있다.

건장한 20대 청년들을 몇 년동안 병영에 모아 놓고 그 시간동안 수많은 권리를 제한하며 이들을 착취하더라도 국가안보라는 미명 아래 국가의 공권력은 미담으로 포장된다. 이에 비판적인 사람들도 분명 많으나 권력을 가진 자는 국가이기 때문에 국가의 공권력은 다소 억압적이더라도 유지될 수밖에 없다. 만약 "대통령이 대의민주주의 제도를 폐지하고 본인이 종신으로 집권하려 한대!" 라고 하면 국민은 항거하겠지만 "국가에서 군대에 청년을 몇 년동안 징집해서 강한 강도의 노동을 시키며 쥐꼬리만한 월급을 준대!" 라고 하면 국민은 침묵한다. 왜냐하면 군대에서의 기본권 제한은 전역 이후 전쟁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 이상 경험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비록 징병제 뿐만이 아니다. 다른 억압적인 공권력이더라도 그것이 기본권을 말살하는 정책이 아니고, 국가 질서 유지라는 의도만 있다면 대개의 상황에서는 유지된다. 결국 백성은 본인이 한 계약에 의해 본인이 거꾸로 지배당하게 된다.

결국 나는 국가의 계약은 비록 선대의 인간에 의해 평화적이고 비억압적으로 성사된 계약이라고 하더라도, 그 이후의 양상을 보면 노예계약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누구도 국가라는 우리 안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고작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라고는 지금 살고 있는 우리에서 벗어나 다른 우리에 들어가는 것일 뿐이다. 나는 이렇게 된 이상 국가와의 계약은 공평한 계약이 아니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