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중심 이데올로기의 본질은 무엇일까? 그리고 소련의 맑스-레닌주의와 북한의 주체사상은 동급의 국가 이념인가?
공산국가들의 가장 두드러지는 공통점은 그 나라를 이끄는 ‘국가 이념’의 유무 여부입니다. 여러 국가 이념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아마도 소련의 맑스-레닌주의 사상일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념은 나름대로의 과학적인 기반을 둔 사상이며, 그들 입장에서 역사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자주 사용되어 왔습니다.
물론, 위의 ‘국가 이념‘의 토대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역사 속 공산주의의 발현 과정’과 부합해 있습니다. 맑스-레닌주의를 전공하는 학생들은 다음과 같은 항목들을 사상의 기본 전제로 깔고 있죠.
“모든 역사의 중심에는 경제가 중심이 되며, 경제적 가치란 자본이 아닌 오직 노동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또한 인류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의 사회 진화 과정을 거친다. 첫 번째 선사 시대, 두 번째 봉건 시대, 세 번째 자본주의 시대, 네 번째 사회주의 시대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로 공산주의 시대다. 인류가 공산주의를 달성하고 나면 모든 인류는 평등하게 그 부를 누릴 것이며 하나된 세계에서 사회 갈등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맑스-레닌주의는 사회 과학의 일부이기에 다른 모든 사상과 마찬가지로 자유롭게 비판받을 수 있습니다. 비판을 통해 소련 지식인들은 소련 공산당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죠. 당시 소련의 지식인들은 자신의 국가가 주창한 맑스-레닌주의와는 다르게 역사는 예측될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소련이 주창한 “인류 진화의 다섯 단계”는 그 복잡한 진화 과정을 지나치게 단순화 시켰다고 판단한 것이죠. 지식인들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노동뿐만이 아니라 ‘자본’ 또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맑스-레닌주의에 대해 믿음을 져버린 이들은 결국 사회주의 시스템에 전체 대한 신념 또한 버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소련의 맑스-레닌주의와 북한의 주체사상은 동급의 국가 이념일까요? 많은 이들이 그렇다고 답하겠지만 이 사항은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체사상의 정의
주체사상의 공식적인 정의는 무엇일까요? 북한의 공식 웹사이트 ‘내나라’의 설명에 의하면 주체사상은 “혁명과 건설의 주체는 인민이며 인민은 혁명과 건설을 북돋아주는 힘이다.”라고 정리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한 문장이 주체사상에 대한 이해를 돕는 전부일 수 있을까요? 북한의 노동신문에 의하면 주체사상은 모든 사상과 철학 중 가장 위대하다고 하지 않았나요? 인류에게 새로운 혁명적 단계를 보여주는 사상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이 위대한 사상은 불세출의 천재 김일성 대원수님께서 직접 교시한 것이 아니던가요? 정말로 주체사상이 그렇게 위대하다면 조금 더 연구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주체사상에 대한 추가적인 연구 자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주체사상의 문제는 바로 여기서 발생합니다. 주체사상에 대한 추가적인 연구 자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정말입니다! 북한 언론은 주체사상에 대해 소상히 설명하기 보단 그저 그 ‘위대한’ 사상의 창시자가 김일성이란 이유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위에서 설명된 한 문단짜리 정리마저도 시대마다 또 다른 방식으로 해석되고 있다는 점은 주체사상이 얼마나 모호한지를 뒷받침해줍니다.
주체사상이 이렇게 허술한 이유는 매우 단순합니다. 김일성이 지식인층이 아니었다는 사실 때문이죠. 1945년 이전 김일성은 만주에서 활동하던 항일 게릴라 중 한 명 이었습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게릴라 활동과 철학적 사유는 상당히 거리가 멉니다. 1945년 이후 그는 북한의 지도자가 됩니다만, 안타깝게도 김일성의 머릿속엔 철학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는 전혀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그런 배경 속에서 ‘인본주의에 대한 기초적 설명’ 수준의 사상이 북한을 대표하는 주체사상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죠.
물론 주체사상이 오늘날 북한 사람들의 삶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첫째로 주체사상에 의해 북한에서 종교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종교는 인간이 세상의 중심이거나 인간이 모든 것의 주인이라고 가르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북한의 공상 과학소설에서 외계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많은 경우 공상 과학 소설 속 외계인은 우리 사회의 이면을 보여주는 우화적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유명 SF 시리즈 ‘스타트렉’의 외계인들은 그와 같은 우화적 설정에 충실했습니다. 그에 비해 북한의 작가는 공상 과학 소설을 쓸 때 오직 인간에 대해서만 다뤄야 합니다. 주체사상에 의하면 오직 인간만이 온 우주의 중심이며 모든 것의 주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체사상을 세운 사람조차 김일성이 아냐
주체사상의 마지막 문제는 그 사상의 창시자가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물론 소련의 공식 문서에는 김일성이 그 사상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1960년 평양 주재 소련 대사관의 관리와 북한의 외교부 소속 박독황의 대담은 많은 이들이 알지 못하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1959년 10월 초순, 북한 외교부 소속 박독황에 의하면 최근 조선로동당은 북한의 특별함을 증명할 사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중이라고 했다. 이 사상의 근간에는 조선 민족이 해외의 그 어떤 민족보다 우수하다는 주장이 담겨져 있다. 박독황은 이 사상이 1955년에 처음 소개 되었지만 그 후에 한동안 사멸되었던 사상이라고 밝혔다.지난 2 년간 이에 대한 추가적인 회담은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 말 이 사상은 다시 한번 출간되고 연설의 형식으로 전달되었다고 한다. 위와 같은 공작은 북한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소속 김두만이 작성한 보고서를 기반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1959년 10월 중순 이후 김두만은 조선로동당의 주요 간부들 그리고 평양의 정부 직원들과 함께 이 보고서의 후반부를 읽었다고 한다.박독황은 김두만과 이 보고서와 관련된 자세한 회담을 나눴다. 박독황은 인민 민주주의 국가가 사회주의 국가로 수립되는 과정과 당시 북한이 맞이한 현실적인 장벽 사이의 저항을 허물어 뜨리기 위해 주체사상의 근간에는 민족주의가 큰 주축이 되었다고 밝혔다. 또한 북한의 대다수 간부들에 의하면 이 사상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의 김창만에 의해서 창시되었다고 한다.
주체사상의 진정한 창시자 김창만은 1966년 숙청을 당합니다. 실로 역설적인 일이죠
그러니 위 내용에 의하면 주체사상의 시조는 김일성이 아닌 김창만인 것으로 판명됩니다. 후일 주체사상의 진정한 창시자 김창만은 1966년 숙청을 당합니다. 실로 역설적인 일이죠.
주체사상의 미래
만일 북한이 붕괴 된다면 (특히나 남한의 흡수 통일인 경우 더욱 더) 이는 6.25 전쟁 이후 동아시아에서 발발한 사건 중 가장 역동적인 사건으로 기억 될 것입니다.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면 소련 붕괴 후, 나치 독일 붕괴 후 그 국가에 속해있던 많은 구성원들이 과거 정권을 그리워한 경향을 보였습니다. 그렇기에 북한 사람들도 김씨 일가가 지배하던 그 시절을 그리워 할지도 모릅니다.
북한 붕괴 이후 몇몇 북한 주민들은 새롭게 맞이한 현실과 과거 북한에서 영위했던 사회적 지위 사이에서 큰 괴리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 새로운 사회적 약자들은 민족주의자, 독재 옹호자 그리고 과거 북한의 정치적 엘리트들로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많은 이들은 김일성을 그리워 할 것이며 그 중 몇몇은 김정일을 또 몇몇은 최창식과 같은 중도적 정치인을 그리워 할지도 모릅니다.
어느날 누군가가 나서서 자신은 주체사상을 따른다고 밝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만 기억하세요, 그들이 주체사상을 따른다고 밝히는 것은 그들이 무신론자라는 말을 돌려서 한 것과 같습니다. 또는 본인은 외계인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고 선언한 것과 비슷하죠. 왜냐하면 주체사상은 그 두 가지 말고는 도저히 캐낼 것이 없는 고루한 이념이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