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이 가도 변하지 않는 침략의 역사
미서전쟁과 이라크 전쟁의 공통점미국은 가면이 많은 나라이다. 늘 민주주의의 지킴이를 자처하면서도 실제로는 독재정권을 지원하고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그러면서 평화를 위해서라는 명분을 가지고 전쟁을 일으키는 당사자이기도 하다.
이라크의 후세인이 미국의 충실한 조력자로 남아 있었다면 이렇게 몰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후세인의 가장 큰 실수는 독재를 하면서 미국에 맞서 싸웠다는 것이다. 아랍의 민족주의자, 순교자로 남고 싶은 후세인의 욕심이 너무 컸다. 그렇기때문에 난폭한 살인마이면서 아랍 민족주의를 자처하는 후세인에 대한 평가만 복잡해 졌다.
미국이 무력으로 주변국들을 식민지화 한 역사는 오래되었다. 1898년은 미국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시기다. 우선은 하와이를 미국의 영토로 편입하였다. 그리고 스페인과의 전쟁을 통해서 카리브해와 태평양 연안에 식민지를 확보하였다. 즉 미국의 해외 식민지 개척이 시작된 해이다. 그런데 미서전쟁으로 불리는 스페인과의 전쟁과 105년 후에 벌어진 이라크와의 전쟁엔 너무나 비슷한 점들이 많다.
첫째는 종교와 인종적 편견이 주된 원인이라는 점이다. 미국은 알다시피 청교도들에 의해서 시작된 나라라고 한다. 청교도들의 피가 흐르는 미국인들은 '자신들이야 말로 하나님께 선택받은 존재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들을 통해서 세계를 개종시키고 문명화시키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이러한 신념으로 미국은 인디안들을 쫓아냈고 멕시코로 부터 캘리포니아, 텍사스, 유타 등 서부 지역을 강탈해 버렸다.
이러한 종교적 선민의식과 앵글로색슨 인종주의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1837년 멕시코와 전쟁을 할 때 존 어설리반은 신문사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멕시코는 앵글로색슨족의 월등한 기력에 융합되거나 굴복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완전히 패망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운명에 있다"
존 어설리반의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은 멕시코 만이 아니라 쿠바, 필리핀의 운명에도 영향을 끼쳤다. 미서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쿠바를 보호령으로, 필리핀은 식민지로 만들어 버렸다. 즉 쿠바와 필리핀은 열등한 인종이다. 그러니까 미국의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도 종교, 인종적 편견이 자리잡고 있다. 이라크와의 전쟁을 십자군 전쟁으로 몰고 가려는 부시의 목소리에는 이교도를 물리친다는 보수 신앙은 물론이고, 미국만이 이라크에 자유와 민주정치를 심어줄 수 있다는 우월감이 배어 있다.
두번째로 전쟁을 피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잘 알다시피 이라크는 유엔 무기 사찰단을 받아 들였고 대량 살상 무기에 대한 조사를 피하지 않았다. 그것은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외교적 언어'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무시하고 미국은 무력을 행사했다.
전쟁이 끝났지만 끝내 대량 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오히려 영국에서는 정보조작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미국은 민주화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이라크에 13만 명의 군대를 배치해 놓고 있다.
미서 전쟁도 마찬가지였다. 1895년 스페인 식민지였던 쿠바에서 혁명이 일어났다. 스페인은 혁명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혁명 가담자들을 무차별로 처형했고, 어떤 강제 수용소에서는 수감자 5만 명을 학살하기도 했다. 미국의 극우 신문들은 스페인의 만행을 대대적으로 규탄하고 스페인과의 전쟁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런 상황에서 스페인은 쿠바에서 잔학행위를 저지른 웨일리 장군을 본국으로 소환했고, 쿠바문제는 원만하게 해결될 것처럼 보여졌다. 그런데 1898년 2월 미 군함이 쿠바 근처에서 원인 모를 사고로 폭발해 침몰하는 사건이 발행했다. 그 해 4월 20일 미 의회는 스페인에 전쟁을 선포했고 동시에 전쟁에서 승리해도 쿠바를 병합하지 않겠다는 결의안도 채택했다.
셋째로 전쟁의 이유가 경제적인 문제였다는 점이다. 미국이 스페인과의 전쟁에 뛰어든 것은 남미로의 영토확장과 중국진출을 위한 교두보 확보에 있었다. 미국은 전쟁에 승리한 후에 쿠바를 보호령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것은 명백한 약속위반이었다.
그뿐 아니라 미국은 쿠바의 철도, 광산, 사탕수수 회사를 접수해 버렸고, 미국의 산업은 남미 대륙의 경제를 침식해 들어갔다. 그중 미국의 연합 과일 회사는 남미 국가들의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까지 조정하는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멕시코의 경우, 미국은 멕시코 자산의 43%, 석유시장의 50%를 독점해버렸다.
미국이 필리핀을 식민지로 삼아 버린 것은 중국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1890년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대 중국 교역은 그렇게 활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1890년 후반 미국의 경기가 살아나면서 중국 수출은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미국은 중국을 자신들의 시장으로 삼기를 원했다. 최소한 다른 열강들과 함께 중국경영에 참여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중국은 너무 먼 곳에 있었다. 이런 면에서 필리핀은 중국과 미국을 이어주는 전략적 징검다리였다.
미국이 이라크 침략 목적은 이라크내에 친미 정권을 세우고 석유를 독점하는 것이다. 미국은 이라크의 석유를 통해서 OPEC 산유국들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고,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위한 원동력을 얻게 되었다.
넷째로 전쟁이 끝난 뒷처리가 더 문제였다. 스페인과의 전쟁은 불과 10주에 불과한 '빛나는 소전쟁(splendid, little war)'이었다. 이 전쟁에서 미군 전사자는 450명에 불과했다.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였던 셈이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나서 5200명의 미군이 죽었다. 원인은 말라리아와 황열병이었다. 그리고 필리핀에서는 4년동안 필리핀 독립군과 전쟁을 치르면서 막대한 인명피해를 보았다.
이라크와의 전쟁도 일방적인 승리였다. 미군 전사자가 불과 130명 정도였다. 그러나 이라크 게릴라들의 공격은 계속되었고 매주 3∼6명꼴로 미군이 전사하고 있다. 벌써 이라크전 때보다 더 많은 미군이 전사하였다. 미군의 희생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앞으로는 미군과 함께하는 동맹국들의 희생도 발생하게 될 것이다.
100년동안 미국의 폭력성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횟수가 더 많아 졌다. 구 소련의 몰락으로 견제 세력이 없어진 지금, 세계는 자칭 경찰국가에 의해서 더 시끄러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