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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황실이야기(4) - 1부 창덕궁의 15년 2편: 이토 히로부미, 조선 민중 앞에서 연설하다

3. 서남 순행
    다음으로 생각나는 일은 서남지역 순행 때의 성대한 의식이다이는 왕 전하가 이토 공작(이토 히로부미)의 진언을 듣고 조선 500년 동안 조선 국왕은 병란이 일어나 몽진을 할 때 외에는 어가가 궁 밖을 나온 적이 없다는정조의 수원행차는? 오랜 관습을 깨고 단행하신 일이다이 서남지역 순행에 관한 진언은 1909년 신년 하례식 자리에서 이토 공작이 넌지시 제안강요을 하면서 즉시 이완용 총리이런일은 안끼는 때가 없다와 합의해 그 자리에서 전하의 재결을 받았다.

순종 서북 순행 남대문역 출발.jpg [연재] 대한제국 황실이야기(4) - 1부 창덕궁의 15년 2편: 이토 히로부미, 조선 민중 앞에서 연설하다
남대문역(서울역이 생기면서 없어짐)에서 순행이 출발하는 모습
그리하여 새해 1월 7일 이토 공작이 직접 왕 전하를 호위하며 궁중 · 정부의 원로 대관 10여 명 모두 금색 찬란한 대례복을 갖추어 입고 궁정 열차에 올랐다전하께서는 남쪽으로는 부산에서 서쪽으로는 의주까지 넓은 지역을 순행하시어 이르는 곳마다 백성들의 변화를 살피셨고 자연 경관을 염려하셨으며 효자와 효부를 표창하셨고 홀아비와 과부를 위로하셨다전하가 타신 열차가 거쳐가는 지역 가운데 환영환송을 나온 한 노인이 눈물을 흘리며 성덕에 감격하는 광경은 매우 극적이었다.

순종을마중나와있는백성들.JPG [연재] 대한제국 황실이야기(4) - 1부 창덕궁의 15년 2편: 이토 히로부미, 조선 민중 앞에서 연설하다
마중나온 백성들. 이들이 황제를 상징하는 깃발을 들고 순종을 환영하여 일본에서 당황하였다고 해
순종 정주역.jpg [연재] 대한제국 황실이야기(4) - 1부 창덕궁의 15년 2편: 이토 히로부미, 조선 민중 앞에서 연설하다
정주역에 도착한 순종을 마중나온 신하들. 양복과 관복을 입은 사람들이 뒤섞여있어 묘하다 
순종 평양만수당어휴식.jpg [연재] 대한제국 황실이야기(4) - 1부 창덕궁의 15년 2편: 이토 히로부미, 조선 민중 앞에서 연설하다
평양 만수당에서 휴식을 취하는 순종 일행
이 순행에서 이토 공작이 처음부터 끝까지 왕 전하를 수행하였으므로우리들도 때로는 여관에서 때로는 기차 안에서 매일 직접 그의 풍모를 접할 수 있었다그러는 동안에 이토 공작이 위대한 인격자이며 생사를 초월한 불세출의 정치가라는 생각이 들었으며흔히 역사에 길이 남을 영웅이라고 하면 바로 이런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일뽕에 거하게 취할거 같아!까지 들었다이토 공작은 왕 전하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우리나라(일본)의 메이지 유신 이래 덕망 높은 메이지 천황과 충성스럽게 보필하는 신료들이 서로 믿고 서로 도움으로서 오늘날의 상승하는 국운을 이루었다고 거듭 강조하며 진언하였다.그만세뇌해 그리고 부산에 군함을 회항시키고 선상에 연회를 마련하여 일본제국 해군의 위용을 왕 전하께서 보실 수 있는 자리를 제공하기도 하고개성의 만월대에 올라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미신을 타파하는 등 아주 짧은 동안에 지도해야 할 점을 찾아 모든 것을 지도하였다.

만월대돌아보는순종.JPG [연재] 대한제국 황실이야기(4) - 1부 창덕궁의 15년 2편: 이토 히로부미, 조선 민중 앞에서 연설하다
만월대를 둘러보는 순종. 조선이 멸망시킨 고려의 왕궁터를 보면서 순종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대한제국기병.JPG [연재] 대한제국 황실이야기(4) - 1부 창덕궁의 15년 2편: 이토 히로부미, 조선 민중 앞에서 연설하다
행렬을 호위하는 대한제국군
이번 순행에서 특히 내가 인상 깊게 느낀 것은 평안북도 선천에서 경험한 이토 공작의 영웅적 태도이다선천은 이후에도 데라우치 마사타케 총독 암살 음모의 본거지가 된당시 반일사상애국의 중심지역이었으며 인심이 매우 험악하였다이토 공작은 순행 일정 중에 의도적으로 이곳에 2시간 정도 정차하기로 하고 열차에서 내려 역 밖으로 나가 운집한 사람들에게 옥외 연설을 시도하였다지금도 그때가 기억나는데이토 공작은 군중 속 중앙에 있는 그리 높지 않은 언덕에 올라서서 통역관을 데리고 호위병 하나 없이 맨몸으로 적진에 뛰어드는 기개를 보여주었다당시 경무국장 마쓰이 시게루는 이를 매우 우려하였으나 이토 공작은 단호히 뿌리치고 유유히 언덕 위로 올라갔다그 장면을 묘사해보면수만 명의 사람들이 운집하여 백의의 물결을 이루면서 한쪽 평지를 메운 가운데조금 높은 곳에 이토 공작과 통역관 두 사람의 검은 두 그림자만이 보일 뿐이었다.

이토 공작은 먼저 동양의 현 상황을 설명하고 한일 약국의 역사적 관계와 관련하여 역대 조선의 잘못된 정치를 언급하였으며 지금 현재 한국이 매우 쇠약해져 빈사상태라는 사실을 들어일본제국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국운을 유지할 수 없는 까닭을 말하고 이에 일본제국이 보호정치를 실시할 수밖에 없었음을 당당히 역설하였다. 나아가 말에 더욱 힘을 주어 외쳤다.
만약 우리의 의견에 이의가 있다면 기꺼이 듣겠다그리고 우리는 그 사람을 계몽하기 위해 그 어떤 가르침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는 잠시 언덕 위에 서서 군중들을 위엄과 자애로움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그 순간 천지가 적막에 싸였다.이게뭔개소리야라고느껴서만약 군중 가운데 이토 공작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자가 있었다면 권총 한 발폭탄 하나로 이토 공작의 생명을 간단히 앗아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공작의 담력에 수만 명의 군중이 모두 압도되었던 것이다.하지만일년만에하얼빈에서탕탕탕

그러나 이토 공작도 다소 위험을 염려한 듯연설을 마치고 돌아와 의사인 고야마 다다시를 바라보며 말했다.
고야마사실 붕대를 준비했는데 말이야…”쫄았제?
그러고는 크게 웃었는데 그 웃음소리가 지금도 내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이밖에 이토 공작은 평양대구부산의주개성에서도 차가운 바람에 살을 에는 추위 속 야외에서 군중들을 향해 시도하였다이토 공작의 이러한 행동은 그후 부임한 역대 총독(조선 총독)들이 삼엄한 호위 속에 군중까지 선발한 가운데 순시를 하고 지방 사람들과의 면회는 아예 허락조차 하지 않는 행동과 비교하면 사뭇 다른 면모를 느끼게 한다.안그랬으면죽었겠지 만약 그들이 내 이야기를 듣는다면 무척이나 부끄러울 것이다. (다음편에 계속)

 순행중행궁을나서는모습.JPG [연재] 대한제국 황실이야기(4) - 1부 창덕궁의 15년 2편: 이토 히로부미, 조선 민중 앞에서 연설하다
순행 중 행궁을 나서는 모습. 이미 태극기와 일장기가 같이 걸려있네ㅠㅠ

서남 순행을 강요한 정치적 의도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천황의 순행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는데 700여년간 막부시대를 거치면서 일본인들 사이에서 잊혀져 간 천황의 존재를 적극 부각시키기 위해서였다고 해그렇지만 반대로 우리나라는 익숙한 국왕의 존재를 굳이 국민들에게 드러낼 필요는 전혀 없었지 1909년의 순행은 반대로 통감부와 대한제국 황실이 얼마나 평화롭게 공존하는지 과시하기 위해서라고 봐.그리고 통감부에 의해 개화되어 가는 순종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이토 히로부미는 순종을 데리고 다니면서 순종은 가만히 있게 하고 자기가 앞에 나서 통감부를 선전하고 정책을 선동하는데 노력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