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이토 히로부미의 사망
1908년 겨울, 총리 이완용 후작이 프랑스 교회 앞길에서 자객의 습격을 받아 사경을 헤맬 정도로 중상을 입은 사건 이래 조선은 완전히 공포시대를 맞았으며 민심 또한 흉흉해지고 있었는데, 여기에 더욱 압박을 가하는 일대 사건이 발발하였다.(저자가 기억을 헷갈린게 이토 히로부미가 먼저 죽고 그 뒤에 이완용 암살 시도가 있었음)
1909년 여름, 이토 히로부미 공작에게 하해와 같은 조칙이 내려와 공작은 통감의 자리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왕 전하(순종)와 태왕 전하(고종)는 이토 공작과의 이별을 아쉬워하시며 우리 천황 폐하에게 그의 유임을 청하려고 하신다는 말까지 있었다. 그리고 이완용 총리는 경회루에서 내외귀빈 1000명을 초청하여 송별 연회를 마련하였다. 이토 공작은 조선 통치의 대업을 이룬 책임을 다하고 그 근본 취지를 좀더 확고히 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이 말년에 국가를 위해 해야 할 일이라고 굳게 믿고는 가을에 노구를 돌보지 않고 만주행을 기획 하였다. 러·일·중 3개국 세력의 각축장인 국제도시 하얼빈에 한 발을 내딛고 러시아의 문무 관병과 악수를 나누는 찰나, 이름도 없는 일개 조선 청년(안중근 의사)의 권총에 맞아 영웅적인 위대한 죽음을 맞았다.ㅅㅂ
총격을 받기 직전 찰나의 이토 히로부미(5번)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조선을 사랑하며 조선인과 가장 가까웠으며 조선에 문화 혜택을 주었고 조선인들이게 크고 깊은 신뢰와 존경을 받았던개솔이 이토 공작이 오히려 그가 사랑하던 조선인 손에 귀중한 생명을 빼앗기고 만 것이다. 은혜를 피로 갚는 이 비극쾌거에 직면한 당시 궁중은 놀라움과 추모의 분위기를 넘어 국운과 왕실의 앞날을 걱정하며 극도로 불안과 공포에 휩싸였고 망국폐제의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불길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조선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한복 코스프레를 하고 조선인 첩도 둔 이등박문 공작(가운데 갓 쓴 사람)
당시 전하의 심정은 살피기조차도 송구하였는데 가까이 모시는 사람에게 조용한 어조로 이렇게 탄식하셨다고 한다.
“이토 공작이 있기에 한국이 존속할 수 있었다. 지금 공작을 잃었으니 국운이 이미 다하였구나.”
한편 덕수궁에 계시는 이태왕 전하께서는 마침 저녁 수라를 드시며 시종·궁녀들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우고 계셨는데 이토 공작의 흉변 소식을 들으시고 손에 들고 있던 수저를 놓으시며 안타까운 마음에 잠시 아무 말씀도 없이 계시다가 이윽고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조선의 사직도 여기까지로구나. 이토 공작은 짐을 대신하여 세자를 아낀 스승이다. 세자의 앞날이 어찌 될까.”
태왕 전하는 이렇듯 국운을 염려함과 동시에 가장 사랑하시는 세자의 일까지 걱정하시면서 비통한 눈물을 지으셨다고 한다.
왕 전하는 즉시 태왕 전하를 방문하시어 이후의 대책을 강구하셨는데, 우선 이완용 총리를 불러 전국 민중에게 조칙을 내려 경계를 강화하는 한편 우리 황상께 충심에서 그 부덕함을 사과하시고, 이토 공작에게는 특별히 왕족에게만 내렸던 애도의 말과 문충공이라는 시호를 하사하였으며 특사로서 이토 공작과 친교가 두터웠던 중추원의 김윤식 의장, 궁내 대신 민병석 자작을 도쿄로 파견하였으며 많은 부조를 보내어 예를 다하여 국장 의신에 참석하게 하였다.
이토의 죽음에 대해 고종과 순종이 본인들이 느낀 심정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은 데다 1편에서 얘기했듯이 이 책은 일본인 관료의 글인 만큼 만약 이들이 이토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좋아하는 반응을 보였다면 절대 그랬었다고 적을 순 없었을 거라 생각해. 물론 왜곡 없이 사실을 적었을 가능성도 있으니 판단은 여러분이 알아서… 참고로 이때는 이미 대한제국 황제로서 스스로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지만 한편으론 나중에 조선 총독부가 생기고 온 조선 총독들에 비해 이토 히로부미는 상대적으로 고종과 순종에게 어쨌든 예의는 갖춰줬다고 하니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 나쁜놈인 판에 그나마 나한테 조금 잘해준 놈에게 조금은 호감을 가졌을 수도...
매 챕터 뒤에는 옮긴이의 해설이 달려있어 내가 이렇게 같이 옮겨왔는데 여기선 매천야록을 인용했어. 당시 안중근 의사가 이토를 사살했다는 소식이 서울에 알려지자 “사람들은 감히 소리 내어 통쾌하다고 말은 못했지만 만인의 어깨가 모두 들썩하였으며, 저마다 깊은 방에서 술을 따라 마시며 서로 축하하였다.”라고 적혀있어. 사료로서 신빙성은 모르겠더라도 당시 사람들의 반응이나 분위기를 참고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봐.
![사살직전의이토히로부미.jpg [연재] 대한제국 황실이야기(6) - 1부 창덕궁의 15년 4편: 이토 히로부미의 사망](http://image.fmkorea.com/files/attach/new/20150803/4330072/53107703/202332184/bc2ccdeddcd53563a015c74e25a2206f.jpg)
![안중근 의사의거.jpg [연재] 대한제국 황실이야기(6) - 1부 창덕궁의 15년 4편: 이토 히로부미의 사망](http://image.fmkorea.com/files/attach/new/20150803/4330072/53107703/202332184/7301c7eae01cc293b62d7fd3003b61c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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