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그로를 위해 다소 자극적인 제목을 썼긴 했지만 이번 편에서 다루는 윤덕영은 조선 왕실에서 15년동안 일하면서 당시 정치적 상황을 가까이서 겪은 일본인인 저자도 인정한 한일강제병합의 1등 공신인만큼 이완용에 뒤떨어지지 않는 최악의 매국노라고 할 수 있을거야. 야사에 한일병합 회의내용을 듣고 조카인 순정효황후가 옥새를 치맛폭에 감추고 내주지 않자 강제로 빼앗아 갔다는 말도 있고 특히 병합 후 일본의 숙원은 순종이 도쿄를 방문해 덴노(천황)를 알현하는 것이었는데 이 일을 이완용에게 맡겼다가 순종으로부터 호통을 들으며(1부 연재에서 순종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낸 분노ㅠ)개쪽당하고 버로우 탄 일을 윤덕영이 깽판(나중에 자세하게 다룰 것임 이 깽판을 본 저자조차 윤덕영이 "옛 신하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무리한 시도까지 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했다"라고까지 함)까지 친 끝에 결국 성공시키고 말았어. 굳이 둘을 차이를 비유하자면 우리나라를 일본에 팔아먹는 일을 이완용이 판을 짜 설계하면 윤덕영은 궂은 일을 도맡아 해결하면서 판을 진행하는 일을 맡았다고 해야하나.AC매국의 피를로와 가투소
8. 한일병합의 1등공신, 윤덕영
병합을 전후한 시기 창덕궁의 중심세력은 누가 뭐라 해도 윤덕영 자작이었다. 이를 단순히 윤 자작(윤덕영)이 왕비 전하(순종의 비 순정효황후)의 부친인 윤택영 후작의 형님으로서 온후한 후작을 대신하여 그 세력을 대표하기 때문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물론 조선에는 "부원군(외척)은 그 부가 탁지부(이전의 호조, 지금으로 치면 기획재정부)를 능가하고 지위가 대신을 능가한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이므로 외척인 윤씨 집안이 왕궁의 중심세력으로 자리한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지만, 병합 이후 지금까지 그 세력이 여전히 번창하는 데에는 달리 드러나지 않는 이유가 숨어 있을 것이다.뭐긴 뭐겠어 친일매국이지내가 지금 그 이유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심히 유감스럽지만 진정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만 거기에 달리 드러낼 수 없는 사정이 숨어 있다는 내 말만은 독자들이 믿어주었으면 한다.역시 맞나 보다
사실은 이완용 뺨치는 매국노 윤덕영
주문 제작한 모자가 맞지 않을 만큼 머리가 커서 대갈대신이라는 별명이 있었다고... 당시의 풍자화
이 사진보니까 진짜 좀 큰 거 같기도..
병합 당시 민심이 흉흉하여 정국은 분규 상태에 있었으며 피를 보게 될지도 모를 참화가 다가오고 있었고 조선의 국운과 왕실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다 일본만 없었으면 안 생겼을 일그런 가운데 윤 자작이 스스로 앞장서서 대외적으로 총독의 방침에 순응하고 대내적으로 이완용 수상과 협력하면서 따뜻한 근친간의 친분으로 전하(순종)에게 험악한 주위 형세를 설명하몄다.설명 아닌 협박윤 자작이 왕실의 존엄과 영광을 영원히 보전하기 위해서는 병합밖에 방법이 없다고 왕 전하를 설득하며 양해를 구하던 때에 얼마나 많은 고심을어떻게 하면 나라를 더 빨리 팔아먹지? 하였는지에 관해서는 알려지지 않은 공적이 많이 있다. 이를 데라우치 백작(한일강제병합 체결자이자 초대 조선총독)도 충분히 이해할 뿐 아니라, 윤 자작이 명석한 지혜와 사태가 벌어졌을 때 이를 적절히 제어하는 지략과 용기를 갖춘 걸출한 인물로서 이왕가(대한제국 황실)의 중대한 문제는 그가 없으면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할 정도로 그에 대한 신뢰를매국해결사 표하기도 하였다.
제2대 조선총독 하세가와 요시미치
또한 나중에 병합 이래 왕가의 최대 현안이며 데라우치 총독조차 결국 해결하지 못했던 왕 전하의 도쿄 방문과 천황 폐하 알현 문제에 직면해서도 윤 자작의 공이 컸다. 이 문제는 몇 사람이 나서서 왕 전하께 말씀드려도 좀처럼 확답을 들을 수 없었다. 당시 총독 하세가와 요시미치 백작이 이완용 후작이라면 할 수 있으리라 믿고 후작에게 부탁하여 도쿄 방문을 진언하였으나, 왕 전하는 일언지하에 거절하셨을 뿐만 아니라 많은 근친과 귀족이 자리한 가운데 이 후작(이완용)을 향해 "어려운 일을 강요하여 짐을 괴롭히려는 자"라고 언성을 높여 질책하셨을 정도였다.개쪽 그래서 하세가와 백작 역시 윤덕영 자작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고 특별히 자작을 초대하여 간곡히 부탁하였다. 이에 윤 자작은 큰 결심으로 이를 승낙하고 먼저 덕수궁에 단호한 고육지책을 써서 태왕 전하(고종)을 움직였으며 나아가 왕 전하의 결심을 독려하여 얼마 뒤에 왕 전하의 도쿄방문이라는 중대한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하세가와 총독은 이일로 윤 자작을 조선의 제일 가는 인물매국노이라고까지 극찬하였다.
윤덕영 자작은 아마도 조선에서 평판이 제일 나쁜 인물로 1위일 것이다. 비록 그 인격에 결함도 있지만, 자신이 믿는 바에친일 매진하고 용감하게 종횡무진하며 능력을 발휘패악질하여 난국을 해결하는 힘은 확실히 조선 병합 역사에서 첫째로 손꼽을 수 있는 인물십새끼이다. 이완용 후작조차 그의 안중에는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암암리에 자신이 조선 병합에서 어느 정도 큰 공을 세운 데 깊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완용 후작이 사망한 뒤에는 조선 귀족(한일병합 후 일본으로부터 귀족 작위를 받은 조선 대신들)으로서 앞으로의 활약에 주목할 만한 인물은 이 윤덕영 자작과 박영효 후작(철종의 사위, 갑신정변 주도, 태극기를 고안한 사람그래봤자 결론은 친일파)뿐이다.
박 영 효
창덕궁의 중심세력은 한일병합 이래 윤덕영 자작이었다. 이에 대립하는 세력으로 이완용 후작 세력과 송병준(일진회를 조직해서 매국 친일에 앞장선 ㅆㄱㄹ) · 박영효 후작 세력이 있어 갖가지 암투가 끊임없이 반복되었으나, 대체로 윤 자작(윤덕영)의 세력과 이 후작(이완용) 세력의 대립이 그 중심에 있었다. 윤덕영 자작 외에 궁중에 외척인 동생 윤택영 후작이 있었지만 온화한 귀공자의 기질을 가진 윤 후작에게 계략을 꾸미는 재주는 없었다. 윤 자작은 우선 송 백작(송병준)과 손을 잡고 박 후작(박영효)과도 손을 잡았으며 나아가 민병석, 민영찬 및 민씨 가문(명성황후 친척들)과 연계를 도모하여 그 기반을 단단히 하였다. 이 후작은 병합 직후에 조중응 자작처럼 신임하는 막료, 박제순 자작이나 고영희 자작처럼 덕망 있는 군자들이 주위에 있어 권세의 전성기를 맞았다. 그러나 이후 지지기반인 이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고 이제 친형인 이윤용 남작, 민영기 남작이 남아 있다고 하나 모두 노년을 맞이하고 있어 의지할 만한 재목이 아니었으므로, 그(이완용)의 말년에는 세력이 크게 실추되었다. 잠시 그의 아들인 이항구 남작이 부친의 덕으로 이왕직의 칙임 사무관에 등용되기도 하였으나 본래 자질을 갖추지 못한 자였다.(다음편에 계속)
윤덕영이 옥인동(서촌 일대)에 지은 대저택 벽수산장
벽수산장의 전경. 당시 쌀 한가마니 가격이 7원이었다는데 저거 짓는데 17만원이 들었다고 함ㄷㄷ
멀리서도 보이는 대저택의 존재감. 당시 사람들에게 아방궁이라는 소리를 들었다고..이맛에친일매국합니다
윤덕영, 이완용의 집터자리(현재 지도에 표시했으니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하면 될 듯)
벽수산장은 1966년까지 남아있었는데 지붕 수리 중 화재가 발생하여 훼손된 것을
도로개발한다고 허물어 버림. 현재 담장의 일부분 정도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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